오랜만에 남기는 영화(라고 말하고 책 감상문이라 쓰는)리뷰. 개인적인 인생 영화, <연인>에 대해 남겨보려 한다.
의도치 않았는데 쓰려다보니 너무 많아 또 시리즈물이 될 것 같다. 심리학도였으면 이걸로 논문 준비하지 않았을까...싶은 생각이 든 만큼, 욕심이 많은 작품이다. 작년에 몇 개월 간 여기에 미쳐 있었으므로 정말 이것저것 다 파헤쳐 볼 예정이다. 진짜 별 걸 다 시리즈물로 쓰는 블로그
*편의상 한국어로 번역된 원작은 '소설 1', <The North China Lover>는 '소설 2'로 통칭한다.
<연인>은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실제 청소년기를 투영한 소설이다. 우리가 아는 영화 역시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책 자체는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경계쯤 되는 작품이다. (편애를 포함한)가정 폭력과 그로 인한 심리적 방황, 근친상간(시리즈 후편에서 쓰겠지만 <The North China Lover>에서 둘째 오빠와의 성관계를 서술함), 동성애(친구인 엘렌 라고넬과 키스하는 장면 역시 저 책에서 나옴), 심리적 의존, 청소년기의 성적 호기심, 인종차별 등 인간의 여러 정서적 면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뒤라스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낸 나에게 <연인>의 스토리는 인력(引力) 그 자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부터 확 꽂혀버렸고, 그 다음날 당장 책을 구매해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또 이 소설(?) <연인>의 확장 버전, <The North China Lover>라는 책을 중고로 간신히 찾아 또 읽었다. 저만큼 굴곡있고 폭력적인 환경은 아니었으나,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임박하다 못해 미치기 직전의 상태를 서술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동질감과 위로를 주었다. 중고로 구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마존 직구까지 불사하려고 했다. <The North China Lover>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서 (원작인 불어, 그리고 영어 번역 버전까지만 있음)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읽었다. 영화와 소설1 버전에서 나오지 않았던 여러 비하인드들이 모두 녹아있어 정말 재밌었다. 살짝 아쉬운 건 <The North China Lover>의 경우 하드커버 기준으로 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책 보호용 종이커버를 벗기면 진짜 옛날식 합판같은 민무늬 표지만 덜렁 있다. 얼핏 보면 그냥 다이어리같기도.
청소년기는 지독하게 많은 책갈피가 끼워진 책 같다. 잘 잊히지도 않을 뿐더러, 좋은 일이든 트라우마든 이미 수없이 되새김질한 사건만 계속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10대 시절의 일을 어제 일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뒤라스 역시 그녀의 유년, 그리고 청소년기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연인>은 가난, 편애, 그리고 폭력에 노출되었던 자신의 유년~청소년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녀의 집은 어머니가 부동산 사기를 당한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를 평생 비관하는 동시에 큰아들에게 자아를 의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큰아들은 도박+마약+도벽+폭력에 찌들어 사는 토탈패키지 한량이었다(뒤라스는 세 버전의 <연인>에서 큰오빠를 대차게 깐다). 어머니는 이러한 큰아들의 비행을 모두 알면서도 눈감아준다. 큰오빠가 큰 고기는 내 것이라며 뻐기거나, 뒤라스와 둘째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해도 모른체한다. 심지어는 도박에 쓰기 위해 어머니의 돈을 가져가도 어머니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황폐한 청소년기를 보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는 "파티"를 했던 그 곳에서 그대로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구도 제 자리에 있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큰오빠)의 왕국의 중심이었다-우리가 흘끗 본 가족에서(*뒤라스는 이 책에서 독자를 상황의 목격자로 간주한다. 독자가 제3자라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하고 글을 쓴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는 독자들임)
그녀는 모든 일들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내버려 두기만 한다.
모든 이야기들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비정한 엄마이다.
큰오빠는 엄마를 바라본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짓는다.
엄마는 그를 보지 않는다.
형제는 총 손위의 아들 둘에 딸인 자신, 이렇게 세 명이었다.(밑 사진에 나온 것처럼 오빠들 이름은 순서대로 Pierre, Paulo) 그런데 이 작은 오빠라는 사람은 허약하고, 우울증도 조금 있다. 큰오빠가 뒤라스보다 이 작은 오빠를 더 많이 때리기에 그녀는 앞장서 그를 보호한다. 뒤라스는 그의 또다른 엄마이다. 둘째 오빠는 그녀에게 모성본능, 동정, 사랑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그는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어린 여동생이 숭배하는, 작은오빠 파울로이다.
이렇게 앞장에서 자신의 가정 상황에 대한 간략한 설명 후, 본격적으로 그녀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에서도, 두 버전의 책에서도 모두 중국인 남자의 이름은 소개되어있지 않다. 확장판격인 <The North China Lover>에서도 자신에 대해 묘사할 때는 The child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남자에 대해서는 He, The Chinese라고 지칭한다.
개인적으로 이 때의 양가휘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어떤 인터뷰인가 보니 뒤라스가 실제 자기 연인은 양가휘보다 더 잘생겼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741#photoId=1119088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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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사이공으로 가는 배에서 처음 만난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만 15세 반. 우리나라 나이로 고1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소설1에서는 중학교라고 나온다. 그녀는 어머니와 떨어져 사이공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는 하얀색 명주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내린 차는 소설1에서는 B.12(1925년 시트로엥사가 생산한 프랑스 최초 순 강철제 자동차)라고 나오고, 소설 2인 <The North China Lover>에서는 모리스 레옹 볼리로 나온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누가 봐도 부유한 집의 자제이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청나라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편 중독으로 인해 실질적 운영은 아들인 그가 했고, 일을 그대로 물려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드디어 처음 대화를 나눈다. 담배를 피냐고 말을 거는 중국인 남자의 손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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