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골 기질로 고민하는 취준생 A들에게 이 글이 나름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연히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바닥을 치는 구인배수와 함께 취준생들의 멘탈도 바닥을 치는 요즈음이다. 내 경우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반이 넘었고, 취준을 시작한 시점으로부터는 3년이 지났다. 스스로를 원망하며 보냈던 그 지독한 3년이 멎은 건 최근의 일이다.
전제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국 취업 시장에서 꽤나 '튀는 사람'이었다. 학벌 어드벤티지도 거의 없고 특이한 이력이 주구장창이었던.
뭔가 중소와 중견기업 신입 풀에서는 하이스펙(이라는 말을 면접관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었다)이고 대기업을 가기엔 학벌(*심지어 문과이다)이 걸리는 포지션이었달까.
학부 시절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정부지원 창업에도 도전해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하지만 해당 분야 비전공자였기에 Q&A 디펜스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최종탈락). 전공 관련한 정부부처 주관 대회에서도 성과가 있어 학교에서 플래카드를 걸어주었다. 2개 정도의 외국어를 각각 (1)웬만한 프리토킹에 문제없지만 공인 성적이 엄청 높진 않은 (2)공인 시험 급수는 괜찮지만 회화 이슈가 있는(?) 수준으로 구사하는 애매한 필살기도 있다. 이외의 자잘자잘한 수상 이력들이 이력서를 나쁘지 않게 메워주었다.
그 외에도 혼자 노트북으로 개인 프로젝트들을 돌리고, 미국 로펌과도 협업해보고, 외국에도 1년 나가있는 등 별의 별 걸 다 했었다. 학부시절부터 졸업 이후에도 3개월 이상 편하게 쉰 적 없는 '쉬었음 청년'이었다.
하지만 저조한 고용률 탓인지, 그냥 내가 어디에 핏하기엔 너무 모난 돌인지, 취업이 어려웠다. 진짜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업들의 합격 통보 몇 개를 거절하니 N년째 백수 생활 중인 내가 있었다. 오열하거나, 불면의 밤에 몸부림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실제로 나같은 신입 지원자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혁신적인 인재다! 꼭 붙잡고 싶다
일은 잘할 것 같은데... 조직에 스며들기엔 너무 튄다
하지만 나로서도 그런 시선들에 반박할 수 없었기에 나와 맞는 곳이 올 때까지 버텼다. 조직은, 특히 신입에게는 조직의 무난한 바퀴 역할을 원하니까. 공공기관일수록 더욱 그러해서, 모 경제단체 면접에선 대놓고 조직 적합성에 대해 묻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조직의 면접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스스로도 그러한 분위기에 맞지 않을 듯하여 지원을 적게 했기에.
당시 변호사 임현서 씨의 방송 출연분을 보고 꽤 위안을 얻기도 했었다. 물론 그 정도의 머리는 안 되지만, "Why not?"이라는 마인드가 기본 탑재된 사람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은 짙었다.

주로 사기업을 준비했는데, 1차 면접에서 팀장이 좋게 보고 합격자로 내정했지만(인사팀에서 2차 면접 전 전화가 왔었다), 2차 면접에서 임원이 안좋게 보고 탈락시키기도 했다. 졸업도 전이라 지금보다도 덜 둥글었으니, 사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 이후 겪은 면접들은 어쩌면 꽤 전형적인 어려움들이었다. 면접에 불러 놓고 "사실 우리 회사에서 이 정도까지(제2 외국어)는 필요 없거든요"를 말하고 면접 내내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다던지...(채용 공고엔 해당 언어 우대가 적혀 있었다. 코스피 상장사인데 그 정도의 체계도 없다니) 여자인데 OO 할 수 있느냐, 결혼했느냐(채용법 위반 사항이었고, 심지어 외국계 회사였다) 정도의 무례는 흔했다.
경쟁률 2:1 최종 PT 면접에서 크게 칭찬받았지만 둘 다 탈락시키고 재공고도 없었던 기억 등...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은 미로같았다.
그런 과정들과 인턴 생활을 병행했고, 추가로 상술했던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하며 취업 준비를 지속했다. 기약없이 또다른 도약과 실패를 반복하며 아파했던 3년의 시간은 녹진한 자아 성찰이 스며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010)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취준생은 일단 스팸 전화라도 받아야 하기에 의아해하며 수신했다.
발신자는 무례할 정도로 압박 면접을 행했던 모 중견기업 임원이었다. 골자는 '왜 합격 통보 이후에도 입사 포기를 했는지, 처우 문제인지 면접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였다. 그 면접날 지나친 압박 면접에 저녁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터라, 차갑게 이유를 반문했다(무슨 이런 후속 전화까지 하나 하고 다시 짜증이 올라올 정도였다). 이 때 들은 답변은 내 지난 3년의 일부를 위로할 만한 보상으로 남았다.
압박 면접에 대해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이전 회사(모 대기업)에서 그런 방식으로 면접을 하도록 교육을 받았어서, 많이 행해 왔거든요. 저 역시도 이 회사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OO씨가 하이 스펙이라 서류에서 한 번 떨어뜨렸었는데요.
나중에 재지원하셔서 입사 의사가 있는 걸로 이해하고 면접을 본 상황이었거든요.
저도 이런 전화를 잘 하진 않는데...
면접 후에 어렵게 상부에 TO를 한 명 더 늘려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한 명은 이 직무를 시킬 만한 역량이 있는 친구이니, 잘 트레이닝 시키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요. 강단도 있고 품질 좋은 야생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긴 통화를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이에 마음이 바뀌어 입사 포기 철회 후 오퍼레터에도 서명했다.
실제로 부서는 그대로인데 해당 JD 업무는 동기 분에게 가고, 좀 다른 업무(특정될까봐 상술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향후 커리어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꽤 비중 있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N년 정도 한 직무만 준비하다보니 그 정도까진 얼추 가늠이 되었다.
면접 과정 역시 상당히 독특했다. 보통 면접에는 인사팀이 동행하고, 부득이하게 부서 실무자+임원 조합인 경우, 실무자가 실무 질문 등을 많이 하고 임원은 인성 관련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곳은 인사팀이 안내만 할 뿐 면접장에 동행하지도 않았고(!), 팀장도 적당한 질문 몇 개 이후 추가 질문이 없었다. 혼자 들어간 면접에서 임원급 되어 보이는 면접관이 40분 가까이 압박면접을 진행했다. 나올 땐 '다시 볼 일 없겠지'라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얼레벌레 취업이 되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회사에 대한 불만이 없진 않지만... 일단은 배워 나가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신입임에도 적당한 인정(과 부담?)과 함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 졸업 전, 좋은 기회를 스스로 찬 것 같아 자책과 방황을 반복했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그 과정들 역시도 패기만 담겨있던 작은 그릇을 넓히기 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을 거라고. 어쩌면 더 좋은 기회를 담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참고로 내 커리어 최종 목표는 대기업 입사가 아니다.
반골들의 시야는 전형적이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삐딱하고, 관행에 물음표를 던지며, 이미 닦인 길 이외의 경로를 개척하는 진취성을 지닌다. 윷놀이에서 모를 위해 빽도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에게, 개~윷 정도를 원하는 다수의 조직(특히 한국 제조업계)들은 차가운 눈초리를 던지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윷가락을 던져서 모를 얻을 확률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그 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모의 퍼포먼스를 원하는 조직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조직은 생각보다도 더 강렬하게 당신을 원하고, 대우할 것이다. 그러니, 그 희박하지만 큰 저력의 포텐셜을 위해 버티라고. 그게 우리같은 부류에게 더 적합한 기회일 수도 있다고. 정말 이런 케이스도 있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각 세대가 짊어진 십자가가 존재하고, 내 세대의 십자가는 고용 및 소득 문제의 지분이 큰 듯 하다.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스타트선 근처에서 절망하는 당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그릇과 역량을 갈고닦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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