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3)
2021.04.24 - [영화 후기] - 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1)
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1)
오랜만에 남기는 영화(라고 말하고 책 감상문이라 쓰는)리뷰. 개인적인 인생 영화, <연인>에 대해 남겨보려 한다. 의도치 않았는데 쓰려다보니 너무 많아 또 시리즈물이 될 것 같다. 심리학도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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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 [영화 후기] - 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2)
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2)
2021.04.24 - [영화 후기] - 뒤라스의 사춘기, <연인>의 세 가지 버전 분석(1) 의 세 가지 버전 분석(1)" data-og-description="오랜만에 남기는 영화(라고 말하고 책 감상문이라 쓰는)리뷰. 개인적인 인생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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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된 결혼 얘기. 당대 인식으로 백인 여자와 동양인 남자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일 뿐이었다. 영화나 <북중국의 연인들(영어본)>모두 'Chinese'라는 단어가 가장 자주 등장한다. 처음 배에서 만났을 때에도, 첫 잠자리 후 중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에서도.
"Chinese, what's more(게다가, 중국인이잖아요.)"
(이미지 출처: https://www.tumgir.com/tag/l%27amant%201992)
어머니의 부동산 사기 피해와 그로 인한 빈곤 등 여러 문제로 인해 결국 소녀의 가족은 베트남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남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넨다. 어머니의 선물이라며. 또, 소녀의 큰오빠가 치고 다닌 사고 수습 비용을 모두 대주기도 한다. 여자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남자에 대해 재평가를 한다. 자신이 그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다며.
그리고 소녀에게 묻는다. "단지 돈 때문에 그를 만나는 거니?"
소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미세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흔들리는 어머니의 고개가 킬링포인트이다(어머니의 사진은 찾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 자세히 보면 나온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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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두 사람은 무척이나 괴로워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남자의 역대급 멘트가 등장한다.
That's all I do now. I have no more desire. I have no more love. It's wonderful, incredible.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나는 더 이상 어떤 열망도, 사랑도 없어, 놀랍게도.)
영화에서는 "Look at me. I'm going to die of love for you.(날 봐. 나는 너에 대한 사랑으로 죽어가고 있어)"로 등장한다. 사실상 이 영화에서 비추어지는 남자의 전체적인 행동이 함축된 말이다.
(사진 출처 : https://freshmoviequotes.tumblr.com/post/139874099093/the-lover-1992)
<북중국의 연인들>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묘사가 나온다.
남자는 단호하게 소녀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더 이상은 오지 말라고 한다.
"다시는. 내가 당신을 부를지라도."
그리고 정말 소녀는 떠난다. '알렉산드르 뒤마'호를 타고.(참고 : 알렉산드르 듀마는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프랑스 작가이다)
사실상 영화의 절정은 이 부분이다. 숱한 베드신보다도 더욱 진하게 밀려오는 감동을 준다.
영화의 끈끈한 수미상관을 보여주는 소녀의 자세.
그녀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 간의 암묵적인 룰과도 같다. 그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여기에서 소녀의 가정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피폐한 환경이었는지를 재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보이고야 마는 남자의 차.
영화에서는 그가 미동도 없이 그녀를 차 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나왔지만...
그리고 영화의 메인 OST급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 안에서의 왈츠가 나온다. 영화 내에서는 쇼팽 왈츠 10번으로 연출되었다. 일명 'desperation waltz'. 절망의 왈츠.
어려서, 확실치 않아서, 너무도 많은 사랑(작은오빠와 엘렌 라고넬, 베트남인 하인 탄에 대한)에 혼란스러워 몰랐다. 잃고 나니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아버린 소녀.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이 부분은 언제 읽어도 울컥한다.
시절인연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그 강렬하고 진한 기억들이 겨우 네 음절로 모두 정의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이 날의, 이 순간들은 죽을 때까지 수없이 되새김질 되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몇 번이고 리플레이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너무 많이 펼쳐 한 쪽 귀퉁이가 닳아버린 책처럼.
소녀에게는 그와의 이별 장면이 그렇게 평생에 걸쳐 사무쳤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재회 장면.
전쟁, 빈곤, 죽음, 캠프(캠프가 '임시수용시설'이라는 뜻도 있다), 결혼, 별거, 이혼, 책, 정치, 공산주의(그녀는 정치적으로도 꽤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그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임을 알아챘다. 나에요. 그저 당신 목소리를 듣고 싶었소. 그녀는 말한다: 안녕하세요. 그는 이전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여자는 그의 북중국 억양을 알아챘다.
...(Paulo의 죽음 이야기는 생략)
...(중략)...
그는 그들의 예전 (사랑)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는지, 그가 얼마나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지, 그가 남은 생애 동안 그녀를 얼마나 사랑할 것인지 말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인지도.
그는 그녀가 우는 것을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아마도 그녀의 방에서-그녀는 끊지 않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그녀가 우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 들으려고 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곳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껏, 서럽게 울었다. 온 힘을 다 해 울었다.
영화 초반에, '귀족 부인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자살한 젊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그 귀족 여자는 영화 후반부에 소녀의 곁을 한 번 더 스쳐 지나간다. 중국인 남자와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과 같은 결을 지녔다. 비록 둘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애닳아하다 목숨까지 내놓진 않았지만, 순수한 사랑이라는 정서적 측면에서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으니.(결혼하고 각자 아이가 있어도 너에 대한 사랑은 영원불변하다며 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한 시절의 불장난같은 사랑은 의외로 인생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개인적 면모의 변화를 경험케 하고, 죽을 때까지도 마르지 않을 수채화처럼 인생 부분부분을 채색한다.
이들의 사랑이 인종주의에 입각했음은(특히 중국인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을 때, 그리고 소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백인과 자 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베트남에는 창녀 외에는 백인 여자가 없다고 말한 것 등)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사람까지 잠 설치게 만든(이건 상당히 주관적인 경험...) 서로에 대한 정열, 그리고 (이 부분은 중국인 남자 한정이긴 하다만) 헌신을 간과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단순히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만으로 이러한 태도들을 일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 이들의 사랑은 각자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대한 도피 행위였을까. 여자에게는 그렇고, 남자는 그렇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여자의 불안한 유소년 시절은 뭐 영화 내내 입증되었지만, 남자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애초에 현실의 도피처로 간주하여 시작하지는 않았다. 원래 금지된 사랑이 더욱 뜨겁듯, 숱한 반대에 부딪히며 더욱 열렬해질 수는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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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의 생전 작품들을 보면, 이른바 '금지된 사랑'에 대한 작품들이 꽤 많다. 동성애(엘렌 라고넬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게 된다)와 인종을 넘어선 사랑 등. 그녀의 사춘기 시절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연인>은 그런 의미에서 '뒤라스 개론'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이야기가 가장 날것의 형태로 남아 있는 자전적 소설이니.
마지막으로, 작년 5월에 처음 접하고 반 년 가까이 내 마음을 애닳게 했던 이들의 실제 사진을 첨부한다.
(본 사진의 기사 원문 : https://www.parismatch.com/Culture/Livres/Marguerite-Duras-amant-photo-1646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