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길

혼자 간 유럽여행에서 20만원짜리 기차를 놓쳤다면?

피클북덕 2024. 1. 14. 16:42

 

 

이런 글을 쓸 날이 올 진 몰랐는데... 졸업여행으로 떠난 유럽 일정에서 변수가 생겼다.
 
당시 나는 인천->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입국해 당일은 스키폴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다음날 스키폴->파리에 기차로 갔다가
3일 정도 후 Andre Rieu의 Johan Strauss Orchestra 공연을 보러 다시 파리->암스테르담으로 기차를 타고 오는 계획을 짜 예매까지 마쳤었다.
 
하지만 짐을 싸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가 늦어졌고,
 
숙소에서 좀 빠듯하게 체크아웃을 했는데, 지갑을(^^) 놓고와버린 것.
 
싹백이었나 아무튼 피부에 별 부담없이 맨들하게 닿는 천가방을 통째로 놓고 온 거라 나올 때까지도 눈치를 못채고... 부랴부랴 다시 돌아가서 가져왔지만
 

대충 당시 본인 상태

 
기차시간이 이미 20분 정도밖에 안 남아있었다.
 
내 숙소는 마레(Marie) 지구였고, 가야 하는 파리 북역(Paris Nord)은 택시를 타고 30분 남짓 걸렸다.
 
일단 급한대로 우버를 잡아서 타긴 했는데....
 
계속 차가 신호에 걸렸고, 심지어 파리 경찰이 모종의 사유로(?) 북역 근처 교통을 통제중이었기에 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내려야했다.
사실 이미 신호등 걸릴 때부터 시간은 지났으나.... 암스테르담->파리 올 때 기차도 살짝 연착됐던 경험이 있었기에 혹시나 해서 플랫폼으로 가봤지만
 
정시개념은 늘 내가 늦을 때만 철저하게 느껴지는 듯하다^_^....
 
 망연자실한 채 다시 확인해 본 티켓에서 보여지는 (2등석)가격은

 
블로그에 작성중인 오늘 기준으로 149유로를 계산해 보니 
 

 

 
 
아무튼 스스로를 상당히 경멸했던 하루였다.
 
당시 기차는 오전 8시 25분쯤이었고,
공연은 오후 7시쯤 암스테르담 Ziggo Dome에서 있었다.
 
기차역에서 다음 기차를 잡고자 키오스크를 두들겨 봤지만 그 날 기차는 싹 매진이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브뤼셀을 도착지로 해봐도 당일 매진은 마찬가지였다(유럽 기차는 N주 전 예약이 필수이다).
 

* 참고로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갈 수 있는 기차역은 파리 북역이 유일하다.

그래서 옆에서 키오스크 두들기고 있는 사람(아마도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혹시 여기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는 버스 탈 수 있는 터미널 어딘가요?"
 
"어...Bercy에 있긴 한데, 그게 암스테르담으로 갈 수 있는 버스인 지는 저도 몰라요."
 
따라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3가지 정도였다.

1. 일단 버스 터미널로 가서 가장 빠른 티켓 끊기 - 약 7시간 반 정도 소요, 기차보다 조금 싸긴 하지만 별 차이X
2. 샤를 드골 공항 가서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 끊기(기차보다 훨씬 비쌀 가능성 높음)
3. 최후의 수단 - 그냥 공연 포기하고 여유롭게 시간대 관계없는 다른 교통수단 잡기(비행기든 기차든 버스든...)

 
다만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일단 해보고 3을 선택하고 싶었다.
따라서 폰으로...설마설마하며 Paris Bercy 버스 터미널 -> Amsterdam 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찾아봤는데...
 

있었다! 한 3자리 남은 10시 출발 버스.

 
그걸 보자마자 바로 파리 북역(Paris Nord)에서 지하철을 타고 Bercy 역으로 갔다. 한 20분 남짓 걸린 듯하다.
 
문제는 Bercy 역에서 내려서 구글맵 도움을 받아 가려니, 무슨 공원을 통과하라는데... 공원 문이 상하좌우로 거의 닫혀있어 패닉 상태에 있다, 마침 마주친 현지인에게 물어물어 갈 수 있었다(그 와중에 다리 안건너야 하는데 건너서 왔다갔다하고... 또 N번쯤 더 소소하게 헤맨 건 안비밀).
 
아무튼 그렇게 10시 버스 출발을 15분 정도 남겨둔 9시 45분 쯤 도착했다.

초록색 FLiXBUS쪽 줄에 서면 된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려 했다가 줄도 많고, 좀 주변 냄새(파리 특 : 대중교통 터미널/지하철역에 담배 냄새 및 이상한...지린내같은거 많이남ㅜㅜ)도 그래서 그냥 카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남은 자리가 있었고, 여권을 제시하여 A4용지에 프린트된 티켓을 발급받았다.
근데 왜 아까 인터넷에서 되던 Youth 할인(만 26세까지 유럽은 Youth로 쳐줘서, 교통이나 박물관 등의 소소한 할인이 있다)이 카운터에선 왜 안되는 지 모르겠다.
 

어...왜 출발지와 도착지가 바뀌어 있는진 모르겠다.

암튼 이 버스 맞긴 맞다. 한국과는 다르게 출입구가 버스 중간에 있다. Security 옆에 있는 저 직원에게 표를 제시하고, QR코드를 찍어가면 탑승해도 된다.

본인이 타는 버스를 잘 찾기 위해서는 티켓에 쓰인 탑승구 번호를 잘 확인해야 한다
늘어선 사람들. 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파리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흡연자(길빵은 기본 옵션)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버스 내부. 2열로 2좌석씩 쭉 있다. 탑승구는 오른쪽 열 중간에 있다. 사진상 저 오른쪽 모니터가 있는 곳이 탑승구 쪽이다.
슬슬 출발

그렇게 지치고 노곤한 상태에서 파리를 떠났다.

내가 길 헤매며 건넜던 다리.

 
혹시나 Bercy 터미널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저 다리 건너지 말길....아 물론 길 잘 찾는 사람들은 알아서 잘 찾겠지만 나처럼 길치라면^^
 
저 다리 건너지 말고, 뭔 터널같이 생긴 후미진 곳에 들어가면 그게 터미널(!)이다.

벨기에를 지나는 중이다.

기차와 버스를 모두 타면서 신기했던 점은... 유럽 농경지는 겨울이어도 초록빛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은 대부분 색이 죽어있는데, 여기는 소도 겨울에 풀 뜯어먹고 있고, 적당히 경작도 하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버스 내부. 사람들이 다 저렇게 발을 옆으로 뻗고 누워 있다.

나는 맨 뒷자리였다. 옆 좌석에 사람이 앉지 않은 경우 사람들이 저렇게 밖으로 발을 빼 누워 있었다. 안전벨트는?

그래서 나도 그렇게 누워 봤더니 편해서 계속 이 상태로 남은 5시간 정도를 갔다.

 
7시간 반 정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과 비교하여 버스 장단점이 좀 명확했다.
 

장점 : USB 포트가 2개라는 점(폰과 보조배터리를 동시에 충전 가능, 저속충전도 아니었음)/ 테이블이 있어 노트북을 펼 수도 있고 음식&음료 먹기에도 편리, 사이드에 흰색 비닐봉투도 제공(쓰레기통 용도)
단점 : 겨울인데도 히터를 안 틀어줌. 


당시에 나는 미열이 있었는데 7시간 반동안 히터도 없는 버스를 타고 가려니 좀 고생을 했다... 코트를 이불처럼 덮고, 목도리를 두르고 마스크를 써 버텼다.

이렇게 짙게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비가 간간히 왔다.

기사분이 휴게소에 도착하여 40분간(!!) 쉬겠다고 했다. 
아...아픈데 나가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뭐라도 먹고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보온이 될 것 같아서 일단 내렸다. 

휴게소 외부. 저 노란 화살표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접근하면 알아서 열린다.
여러가지 빵이 다소 비싼 듯 하면서도 (파리 물가 기준)익숙한 가격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저 밑에 있는 초코 롤을 골랐다.

음료는 Milk Coffee Small을 샀다.

저 작은 종이컵 우유커피 하나에 3000원이 넘는다니..

대충 이렇게 냠냠하며 남은 시간을 버텼다.
드디어 암스테르담 도착!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늦은 오후 5시 30분에 도착했다.
기사님 : On time on time(대충 그래도 제 시간에 왔다는 뜻)
승객들 : (빵 터짐)
 
버스로 암스테르담에 오면 기차와는 다르게 Amsterdam Centraal(a 두개가 포인트)이 아닌, Amsterdam Sloterdijk로 온다. 참고참고

살짝 비가 내리고 있었던 터미널 외부 전경

이렇게 썰 하나가 끝났다. 
 
어차피 유럽여행 (여자)혼자/배낭여행/관광명소/맛집 썰은 찾아보면 많으니, 이런 이상한 썰 위주로 풀어볼까 한다.
 
끄읏-
 
 
(대충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는 가영이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