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쉬운 클래식

황혼기에 그려낸 인생, 아슈케나지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3악장

피클북덕 2022. 12. 29. 03:53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후 그의 말년에 작곡한 곡 중 하나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 3곡 중 한 곡인 이 작품은, 여타 다른 곡들과 달리 이 곡은 그 누구에게도 헌정되지 않은, 다시 말해 오롯한 그만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곡의 별명은 '베토벤의 은밀한 고백'이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의 종지부가 머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후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끝으로 그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았다. 이후 5년이 지난 1827년,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19세기 평균 수명이 40대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57년의 생은 꽤 긴 편이었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와는 달리 인생의 능선을 모두 겪은 황혼기에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비범한 작곡가가 그려낸 인생의 회고는, 그 동기(同期)의 연주자를 만났을 때 더 빛을 발한다. 현 시대 그 광휘를 이어받은 연주자, 바로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이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아슈케나지의 경우 2020년 공식 은퇴를 선언하여, 현재는 그의 실황 연주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연주자의 인생에서 우러나온 표현력이 극대화되는 3악장에 주목해본다. 3악장의 초반부 아리오소의 경우 '슬픔에 젖어'로 시작해 후반부는 '점점 생기를 가지고' 로 극대화된다. 그리고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Adagio ma non troppo, 느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로 시작한 곡의 전체 분위기는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의 푸가로 마무리된다.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차치하고 드는 느낌은, 이 3악장이 '노년에 생각하는 죽음의 모습' 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아리오소 부분의 경우 장례식에서 울려퍼지는 교회의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연상시킨다. 특히 후반부에 세기를 점점 크게 하여 울려퍼지는 화음의 반복은 낮고 무겁게 퍼지는 종소리와도 같다. 아슈케나지의 경우 이 파트를 상당히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그 이후 푸가 파트에서 조용하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거의 회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회한과 만족, 아쉬움이 모두 뒤얽혀 휘몰아친다. 그 폭풍같았던 삶의 일면들을 차분하게 되새김질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노년은 축복이 아닐까.
마지막에는 '그래, 그래도 이것이 나의 삶이었어!'하고 자족감이 넘치게 인정하며 곡은 끝이 난다. 일견 만족스러웠건, 그렇지 않았건 이미 삶은 지나갔다. 머릿속 한 켠에는 곡의 일부와 같이 나의 장례식이 진행된다. 그렇게 타의로 시작되었던 일생이라는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 준비를 한다.

삶은 누구에게나 살아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간으로서 한 번씩은 찾아오는 그 차디찬 본질적 물음표. 이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탈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류하거나, 혹은 운좋게도 긍정적인 실마리를 찾은 자들로서 우리 삶의 지속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직 살아있는 자로서 우리가 꿈꾸는 마침표의 작화 방식은 무엇인가. 마지막 날까지 결론지을 수 없는 그 거대한 물음표에 대한 필자 개인적인 답 역시 보류한 채, 배우 김혜자 씨의 2019년 수상소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