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나는가수다 10년, 서바이벌의 정체성이란

피클북덕 2021. 3. 18. 23:36

한창 2010년대 초반에 슈퍼스타K, 위대한탄생, K팝스타 등 오디션 광풍이 불었다. (심지어 아나운서를 서바이벌 공채로 뽑는 '신입사원'이라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이러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가수의 꿈보다는 현실을 택해 살아가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대중의 신데렐라 스토리 갈망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일반인들을 스타로 만들고 높은 청취율을 거머쥐었다. 대표적으로 허각이 대중의 니즈와 방송사의 공급 방식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해결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환풍기 수리공에서 살인적인 서바이벌을 뚫고 인기 대중가수가 된 그의 서사는 당시나 지금이나 흔치 않으니.

 

 

 

 

꿈이 사치라는 말은 예체능계에서 더욱 현실이다.

 

 

 

그리고 2011년 3월, MBC의 간판 예능, <우리들의 일밤>의 속편 프로그램격으로 론칭된 <나는 가수다>가 첫 방영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원석 고르기' 수준이었던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당히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첫 방영부터 실검이 나가수 관련 키워드로 장악되었다.

 

사진은 찾을 수가 없지만, 잔잔한+첫 무대였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실검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게 기억난다.

 

 

 

1회 당시 이소라의 무대

 

 

www.hankyung.com/life/article/2011030787137

 

'나는 가수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열창…눈물샘 자극

'나는 가수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열창…눈물샘 자극, 문화스포츠

www.hankyung.com

(사진 출처 : 한경닷컴)

 

 

이소라의 무대에 이어 김범수, YB, 정엽, 박정현 등의 무대도 이어졌다. 1위는 <꿈에>를 부른 박정현이었다.

 

 

 

 

1회 당시 박정현의 무대

 

 

 

m.new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94

 

꿈에 박정현, MBC ‘나는 가수다’ 무조건 생존할 것

MBC ‘나는 가수다’서 '꿈에'를 열창중인 박정현 ⓒ MBC 홈 캡처 MBC 예능 프로그램 에서 순위에 상관없이 ‘무조건’ 생존할 것 같은 가수로 박정현이 1위에 꼽혔다. 국내최대 영화예매 사이트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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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newsa)

 

 

그 후 KBS에서 이를 카피한 불후의명곡2를 방영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가수는 평균적으로 연차가 10년 이쪽저쪽 되는 원로가수들을 섭외했다면, 불후의명곡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방영 당시 효린이 나와서 '격' 얘기도 인터넷에 종종 돌았던 게 생각난다.(하지만 나중에 나가수도 핑클 출신 옥주현을 섭외한다)

 

그리고 이 나가수는 임재범의 등장을 전후로 시청률, 인기도 측면의 정점을 기록한 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포맷이나 프로그램 타이틀 자체는 재광풍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됐는지, 2015년까지 총 시즌 3개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인기는 1에 비해 한참 못 미쳤지만.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지난 3월 6일이 2011년 3월 6일 첫 방영을 기점으로 10주년이었다.

 

10년이 지났음에도 5.22대첩은 한 번씩 회자되며, (최고 득표를 기록했던) 임재범의 <여러분> 무대는 짤, 밈, 여러 패러디 등으로 아직까지 (은근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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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유행이 물러간 이후에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솔직히 길어봤자 3년하고 끝날 줄 알았던) 불후의명곡이 아직까지 방영되고 있는 건 물론이고, MBC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전신을 이은 듯한 복면가왕까지. 누군가의 탈락(=불행)에서 오는 긴장감과 동정은 시대를 막론하고 오락적 감정으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더 비관적으로 말해 능력주의 사회에서 아등거리는 우리네의 삶을 투영한 프로그램에서 승자의 도취에 이입하고픈 욕망까지도 내포하는 건지.

 

사실 이 순위로 말할 것 같으면, 막말로 '대중의 입맛에 얼마나 잘 맞는 무대였나'가 순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 같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음악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내포한 무대였어도 대중의 선호 방향과 결이 다른 경우(ex : 이소라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조규찬의 '이 밤이 지나면') 낮은 득표율과 함께 탈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 물론 그 음악성 역시 상향평준화 된 경쟁의 경우 상대성이 더 큰 결정 요소가 되겠지만. 대중성과 음악성, 그리고 본인의 소신까지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음악인의 고뇌란.

 

나가수 시즌1 출연자이자, 조기 탈락자였던(3회 출연 후 탈락) 조규찬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청취자 중 한 명이 "이렇게 뛰어난 분이 나가수에서는 왜 그리도 일찍 떨어지셨었는지..."라는 문자에 이러한 뉘앙스로 답했었다.

"나가수는 누가 더 소리를 잘 지르나, 가 더 중요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쟁쟁한 가수 분들이 많았다." 

 

당시엔 좀 (전국으로 송출되는 지상파 라디오에선 특히나)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호주 경연과 같이 순위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 회차도 꽤 있었으니. 그리고 그의 경연 무대와 순위를 보면 어떤 심경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이해가 간다. 전술했던 '이 밤이 지나면'의 듀엣 무대는 꽤 시간이 지난 후 재평가되었던 것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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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서바이벌형 프로그램은 TV가 있는 한 꾸준히 존재할 것 같다. 오디션 서바이벌의 경우 실력이 있어도 뜨기 힘든 가요계에서 개천 용 나는 과정을 가장 대중적이고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포맷이고, 기성 가수를 대상으로 하는 (나가수,복면가왕과 같은) 서바이벌 프로는 숨은 보석의 재발굴이나 홍보효과라는 음악적,자본주의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트로트쪽만 봐도 요즘은 너무 그 포맷 자체가 양산되어 흥행 효과마저 약발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사실상 시청률만 잘 나오면 비슷한 소재 계속 돌려먹는(대표적인 예 : 아빠 육아프로그램) 방송사의 잘못이 제일 크겠지만. 아무리 신선한 자극이라도 몇 번이면 둔감해져 금세 다른 자극거리를 찾아 헤매는 대중의 특성과 꿈의 사다리의 그 어느 중간 지점을 방송사들도 잘 파악 후 디렉팅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 뭔가 글을 써놓고 보니 나가수에 비판적인 글이 됐는데, 개인적으로 나가수 굉장히 애청했었다. 봤던 것 또 보려고 VOD 결제했을 정도로. (제일 많이 본 회차는 통으로 5번까지 복습했다)지금도 유튜브로 종종 무대를 돌려본다.

 

   

 

 

 

 

 

 

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683

(사진 출처 : ikoreadaily)

 

마지막 영상은 듀엣 미션에서 7위를 차지했지만 그 후 조용히 재평가되어 당시 청중평가단의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던 조규찬의 '이 밤이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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