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

영화 <박화영>과 청소년의 세계

피클북덕 2021. 2. 23. 02:09

 

 

 

 

최근 여자 배구선수들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가 쏘아올린 공이 연예계까지 확산되어 커지고 있다.

 

인생은 부메랑이라는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 좋기는 하다만, 한편으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들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과거에 남을 향해 겨누었던 칼날을 뒤로하고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서 성공하려 했다니. 씁쓸하다. 나도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은 학창시절을 가진 사람으로서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이 된다.

 

청소년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학생일 때는 일원이지만, 졸업 이후에는 (교직에 몸담지 않는 한) 가끔씩 들여다보며 라떼만 홀짝이게 되는 그 곳.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해 다룬 독립영화, <박화영>에 대한 밀린 리뷰를 시국에 떠밀리듯 해보려 한다.

 

 

 

영화 박화영(사진 출처&nbsp; : 부산일보)

 

 

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81015000003 

 

박화영은 가출팸의 '엄마'이다. 

철저한 분업화와 공생으로 다져진 부족도 전체적인 통솔을 맡을 우두머리가 필요한 것처럼, 이 가출팸에서 박화영 역시 그러한 존재이다. 다만 청소년 특성상 구성원 리드와 케어를 동시에 맡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출팸은 어떻게 돈을 조달할까?

삥도 뜯고, (박화영의 엄마는 사실상 박화영을 버린 딸 취급했다. 어릴 때부터 그닥 사랑을 주지 않고 제대로 된 부모 노릇도 안 한 것이다. 박화영이 엄마 역할을 맡게 된 건 이러한 배경이 존재했기 때문이겠지) 엄마 협박도 하고, 조건만남을 위장해 집단적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신고하지 못하게 조건만남남(男)의 얼굴이 박제된 영상을 찍어 놓는 건 덤. 심지어는 초등학생 상대로 성매매도 한다(키스+가슴만지게 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 식). 

 

이렇게 모은 돈은 그들의 생존에 쓰인다.

다만 그 생존이라는 것은 담배와 라면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특징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이 구할 수 있는 일 다운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만의 세계 내에서 자연스럽게 연애도 하게 되는데, 문제는 피임이 제대로 안 돼서 마지막에는 임신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웠다. 임신한 당사자도, 아이도. 성관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화장실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자퇴를 하려고 찾아간 학교에서도 통제 불능 취급을 당한다. 교사에게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다. 사실상 무법지대에서 사는 사람과도 같다.

 

.

 

이들의 일탈은 불우한 성장 환경의 산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쩌면 너무도 과한 통제에 대한 저항이 그렇게 커져 버렸거나, 혹은 적기에 제대로 된 정서적 케어를 못 받았을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학교 안팎의 일탈자로 자리잡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푼다는 것이다. 학교 내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해야 하는 학급 친구들은 그들의 부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상처의 전이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2차, 3차 가해는 더욱 강도가 세져 피해자들에게 더욱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 (애초에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은근한 따돌림(소위 은따) 정도도 굉장한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후유증을 겪는다.) 스마트폰에 의해 개인 정보가 퍼지기 쉽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보는 돌고 돌아 피해자가 전학을 가도 이미 그의 과거는 다 퍼져있다. 이는 좋은 먹잇감이 되어 또다른 괴롭힘의 시작을 낳는다. 학교 내 생태계상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경우도 드물다. 대부분은 자신도 이에 휘말려 또다른 희생자가 될 까 두려워 방관자로 전락해버린다.

 

현재 한국 법에서는 청소년의 범죄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게 처벌한다. 우범소년, 촉법소년, 범죄소년 정도로 나누어 경범죄는 가정법원 차원에서 교화를 시도하고, 조금 더 큰 스케일의 범죄를 저지를 경우 빨간줄이 그이지 않는 소년원에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정도이다.

 

그러나 청소년이라는 게 어느 선까지 면죄부가 되는지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이미 성인의 교활함과 치밀함을 넘어서는 수준의 범죄 발생 빈도수가 증가하고 있고(몇 년 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부르며 때리는 소리가 안들리게 폭행한 사례 등). 이들이 성인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개과천선할 확률도 그다지 높지 않은 까닭이다. 설사 개과천선이 성공한다 한들 피해자의 아픔은 어떻게 보상할까. 이미 대부분은 졸업 후 연락이 끊겨버려 피해자가 평생 속으로 삭히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청소년이 왕따 등의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면 어른들은 '그거 다 한 때야.' , '학생 때 친구 문제는 그 때에만 크게 보이지'정도로 시큰둥하게 반응하거나 동정에서 끝나는 것도 정말 문제이다.

 

철없음은 범죄 동기 참작 과정에서 고려 대상이 될 순 있어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번 학폭 폭로로 인해 학폭을 어릴 적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취급하던 인식 역시 개선되는 동시에, 현재의 청소년들이 자신과 주위를 더욱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해자들은 인적사항에 남지 않은 빨간줄이 사회에서는 언제든 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 깨닫고 정신 좀 차리길.